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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한 영화는 수도 없이 많지만 태평양 전쟁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영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진주만 기습을 소재로 한 Tora! Tora! Tora! (1970) 와 미드웨이 해전을 소재로한 Midway (1976) 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유럽에서 전함을 위주로 한 거함거포식 해전이 벌어지고 있을 당시 태평양에선 함재기를 동원한 원거리 타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드웨이는 이 숨막히는 항공모함 타격전을 다큐멘터리 형식의 사실적 구성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실제 상황을 묘사한 것이기에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할 것이 없다. 그러나 워낙 사실적이고 잘 짜여진 구성과 사실적인 전투장면 덕에 30여년 전에 제작된 것이지만 지금 보아도 Midway 이 영화는 무척이나 재밌으며 전장에서 아주 작은 차이들이 모이고 쌓여 역사를 어떻게 변화 시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헐리우드 대작 전쟁 영화의 특징 중 하나가 당시 유명한 선 굵은 남자 배우들이 다수 출연 한다는 점이다. 이들을 다시 만나는 재미 역시 놓칠 수 없다.

그럼 태평양 전쟁의 흐름을 180도 바꿔버린 Midway 해전(1942년 6월 4일~7일)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먼저 태평양 전쟁을 이야기하면 야먀모토 이소로꾸 일본 제독과 니미츠 미국 제독을 뻬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야마모토 이소로꾸 제독은 사실 탁월한 전략가라기 보다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통치력을 지닌 제독이다. 그는 수많은 파벌이 득실거리는 일본 군부를 카리스마로 통합한 지휘관이라 할 수 있다. 야마모토 제독은 미국의 산업 생산력에 대해 일종의 경외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미국과의 전면전,장기전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전쟁 초기에 무력화시켜 미국과 협상을 통해 조기에 태평양 전쟁을 종식시키고 , 아시아 지역의 맹주 자격을 미국으로부터 인정 받으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야마모토는 진주만 기습 초기부터 미드웨이의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미드웨이를 장악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본 해군 수뇌부 중에서는 반대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 이유는 미드웨이 섬 자체가 워낙 작고, 하와이와 가까워 방어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야마모토 제독은 미드웨이를 장악하면 미국의  태평양 함대가 미드웨이로 움직일 수 밖에 없고, 미드웨이를 선점한 일본은 미국을 기다리고 있다가 미국의 남은 항공모함 전력을 괴멸시키고 협상을 통해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남아에서 획득한 자원을 통해 해군력과 공군력을 강화시키면 태평양의 제해 제공권을 유지 확보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해군 참모부 내의 갈등과 동남아 전선의 육군지원등으로 미드웨이 침공 계획은 실현되지 못하고 있던 차에... 두리틀 폭격대가 동경을 폭격하는 사건(1942년 4월18일)이 일어나게 된다. 이로인해 야마모토의 미드웨이 침공 계획이 승인되고 마침내 일본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함대(항공모함 4척을 포함한 총 3개 함대 3백50척의 함정과 1천여대의 항공기)가 미드웨이를 공략하기 위해 1942년 6월 출항하게 된다.

  한편 1942년초의 미국은 일본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는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다. 진주만 기습으로 해군 전함의 대부분을 상실했으며 엔터프라이즈, 호넷, 요크타운의 불과 3척 밖에 되지 않은 항공모함 으로 일본과 맞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중에 요크타운은 한 달전 벌어졌던 산호초 해전으로 큰 손상을 입고 있어 미국이 운용할 수 있는 항공모함은 단 2척에 불과 했다.
  이러한 전력상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미국의 유일한 무기는 암호 해독 능력이었다. 미국은 일본의 통신 암호 해독을 통해 미드웨이를 공략할 것이라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니미츠 제독은 이 암호 해독을 미국 정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폭적으로 신뢰하여 미드웨이 방어를 강화하고 손상된 요크타운을 비롯한 남은 항공모함을 총 출동시켜 일본 함대를 타격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기본적인 전력 차이나 조종사들의 숙련도 면에서 미국은 열세에 있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시말해서 진검 승부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는 이야기다. 어찌보면 니미츠 제독은 무모하고 어리석었던 제독으로 역사에 남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니미츠 제독은 일본과 비교도 안되는 전력의 열세를 꼼꼼한 정찰로 극복한다. 즉 먼저 보고 먼저 쏜다는 원칙을 수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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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www.users.bigpond.com



  미드웨이 해전은 객관적인 전력상으로는 미국이 일본에 적수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묘하게도 일본의 실수와 미국의 운이 합쳐져 순식간에 전장과 역사의 흐름을 바꾸게 된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이 미국의 항공모함을 전부 격침시키고 승리했다면 대한민국의 해방은 요원해졌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첫 번째 실수는 병력을 분산시킨 것이다.

양동작전의 의미로 아무런 전략적 가치가 없는 알류산 열도에 대한 공략으로 함대를 분산시킨 것이다. 일본이 모든 전력을 미드웨이에 집중하였다면  전황이 어떻게 진행 되었을지 모른다. 알류산 열도를 공략하지 않고 미드웨이 북쪽에서 미국 항모함대에 접근했다면 미국에 운이 따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 실수는 미국이 미드웨이를 공략하려는 일본의 의도를 전혀 모르고 있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일본은 미국의 항공모함들은 진주만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미국은 24대의 정찰기를 미드웨이 주변에 띄워 놓고 일본의 함대를 정확히 추적했지만 일본은 정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국이 4척의 일본 항공모함을 모두 발견한데 비해 일본은 요크타운 한 척만을 발견했을 뿐이다.

세번째는 전장에서 벌어진 사소한 판단 실수와 미국의 운이 겹쳐진 것이다.

  일본 1함대는 미드웨이에 대한 1차 공격시(1942년 6월4일) 함재기의 절반을 미국의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반격에 대비해 어뢰를 장착한 체 항공모함에 대기시켜 놓았다. 그러나 미드웨이에 대한 1차 공격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1함대 사령관 나구모 제독은 2차 공격을 위해 어뢰를 폭탄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지시한다. 그리고 이어 미국의 뇌격기들이 공격이 시작된다.
  하지만 함대 호위를 위해 대기하고 있던 전투기들이 미국의 1차와 2차에 걸친 뇌격기 공격을 거의 피해없이 분쇄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어뢰를 폭탄으로 교체하였다가, 다시 어뢰로 교체한다. 그리고 뇌격기 공격을 분쇄한 나구모제독은 뇌격기들이 미드웨이 활주로에서 출발한 것으로 생각하여, 미드웨이 활주로에 대한 2차 공격을 가하기 위해 다시 폭탄으로 교체하느라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폭탄으로 교체한 항공기들이 출격을 위해 갑판에 대기하고 있던 그 시각 미국의 급강하 폭격기들이 일본 항공모함을 급습하게 된다. 이 순간 일본 함대 호위전투기들은 미국 뇌격기의 공격을 격퇴한 뒤 연료와 탄약보급을 위해 항공모함에 내려앉은 상태였다, 결국 미국의 급강하 폭격기들은 폭탄을 실은 함재기들이 가득한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은 일본 항공모함들에 폭탄을 퍼붓게 된다. 그야말로 절묘한 타이밍에 절묘한 공격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것은 전술적 승리라기 보다는 흔이 '운이 따랐다.'라는 말 이 더 적합할 것이다.

  미국은 미드웨이 해전 초반 뇌격기, 폭격기, 호위 전투기들의 동시 타격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뇌격기들이 각개격파, 거의 전멸당하는 피해를 입는 상황이 발생하지만 오히려 뇌격기들의 사전 공격의 희생으로 일본 항공모함들의 항공 방어망을 제거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 결국 급강하 폭격기의 공격으로 아가키, 카가,히류 세척의 항공모함이 이 공격으로 침몰한다. 이 후 소류에서 출격한 뇌격기들이 요크타운을 침몰시키지만 , 소류 역시 미국 세척의 항공모함에서 동시 출격한 급강하 폭격기의 일방적 공격으로 침몰하게 된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은 4척의 대형 항공모함과 200여명의 경험 많은 조종사를 잃게 되고 태평양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때 입은 피해를 복구하지 못한다. 그리고 주력 항공모함 4척을 잃은 일본은 몸을 움츠릴 수 밖에 없게 된다. 이에 반해 미국의 전력은 급속도로 회복되어 일본을 필리핀 해역에 고립시켜 괴멸시키게 된다.

참고로 2차 세계대전 당시 건조되었던 일본 항공모함들의 운명이다.

Akagi 일본의 첫번째 항모,진주만 기습 참전, 미드웨이에서 침몰
Kaga 진주만 기습 참전, 미드웨이에서 침몰
Soryu 진주만 기습 참전, 미드웨이에서 침몰
Hiryu 진주만 기습 참전, 미드웨이에서 침몰

Zukaku 진주만 기습 참전, 1944 10/28 필리핀 레이테만 해전에서 침몰
Shokaku 진주만 기습 참전, 산호해 해전에서 치명상,1944 6/19필리핀 해전에서 침몰
Hiyo 1944년 6/20 필리핀 해전에서 침몰
Junyo 1944년 필리핀 해전에서 손상 1947년 해체
Taiho 1944년 일본 근해에서 미국 잠수함에 의해 격침당함.

전투 참전 기록이 없는 항공모함 Unryu 1944 12/19 미국 잠수함에 의해 침몰, Amagi 1945 6/24일 폭격으로 침몰, Katsuragi 1947년 폐기, Aso, Ikoma, 는 완성되지 못하고 1947년 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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