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빈성씨의 묘는 어디에 있을까?

  의빈성씨는 정조대왕의 배려로 문효세자가 안장 된 효창묘에 같이 안장된다. 이 효창묘에는 1829년 순조의 딸인 영온옹주, 1856년에는 순조의 후궁인 숙의박씨의 묘를 조성하였고, 고종 7년(1870)에 효창원으로 승격되게된다. 조 선 정조 시대의 효창원은 청파동 일대의 숲이 우거진 지역이었으나 1894년 청일 전쟁시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크게 훼손되었고, 1924년 일제강점기 공원으로 개방되었다. 그리고 1945년 3월 효창원의 묘를 서삼릉으로 다 이전하게 되면서 묘가 크게 훼손되게 된다. 현재 의빈 성씨와 문효세자의 묘는 서삼릉에 있다.

서삼릉의 훼손도 심각

문효세자와 의빈성씨는 독살 되었을까?
  문효세자와 의빈 성씨의 죽음에 독살설이 제기되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왕조실록 기록 상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정조 10년 1786년 문효세자의 정조실록 기록을 보면
  • 5월 3일 세자의 홍역으로 의약청을 설치하다.
  • 5월 6일 왕세자의 병증 호전으로 의약청을 철수하다.
  • 5월 8일 약방에서 말하기를,
    “삼가 세자궁에 진찰하러 들어간 의관의 말을 들어 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시원스럽게 회복되어 달리 열의 증세가 남아 있지 않은데, 열을 식히는 약을 한결같이 드는 것도 신중한 도리가 아니니, 안신환을 잠시 중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하였다.
  • 5월10일 병증이 다시 심해지다. 5월11 세자가 숨을 거둔다.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원스럽게 회복되어 해열제도 드실 필요가 없다고 의관들이 말한지 불과 이틀만에 갑자기 사망한다. 자신의 자식이 병원에서 시원스럽게 회복되었다는 판정을 받은지 이틀만에 사망했다면 가만히 있을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며  요즘 의사들은 멱살이 잡히거나 당장 의료소송을 당했을 것이다. 실제  기록에도 의관들이  죄를 통감하니 처벌해 달라고 하지만  정조대왕은 약방의 잘못이 아니니 문제 삼지 말라 이른다...

  의빈 성씨의 경우는 드라마에서 처럼 장결병(간경변 또는 간암) 에 대한 기록이나 ,기타 질병으로 치료 받은 기록은 전혀 없다.그러나 호산청을 산달에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를 뒤로 미루라고 정조가 지시한 점이나 아이를 이미 둘이나 무리없이 순산한  의빈 성씨의 건강 상태는 매우 양호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역시 갑자기 죽는다.

  왕조실록의 기록만 보아도 두사람이 졸지에 죽음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이 독살설을 제기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며 그리고 이외에도 문효세자와 의빈 성씨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는 병증이 괴이했다는 기록이 몇몇 보인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기록 하나는 정조 10년 1786년 12월 1일, 정순 왕후가 은언군(사도세자의 아들 , 정조대왕의 배다른 동생)을 탄핵하기 위해 언문으로 하교했다는 기록이다.

천만 뜻밖에 5월에 원자가 죽는 변고를 만나 성상이 다시 더욱 위태로워졌으나 그래도 조금은 기대할 수 있는 소지가 있었는데, 또 9월에 상의 변고를 당하였다. 궁빈(宮嬪) 하나가 죽었다고 해서 반드시 이처럼 놀라고 마음 아파할 것은 없지만, 나라에 관계됨이 매우 중하기 때문이다. 두 차례 상의 변고에 온갖 병증세가 나타났으므로 처음부터 이상하게 여기었는데 필경에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막히고 담이 떨려 일시라도 세상에 살 마음이 없었다."

여담이지만 "궁빈 하나가 죽었다고해서 이처럼 놀라고 아파할 것은 없지만" 왠지 드라마 속 정순왕후가 생각나서 섬뜩하기도 하고, 어느 왕실이나 마찬가지 이지만 조선시대 후궁의 존재란  왕손을 생산하는 일 이외에는 별로 존재 가치가 없었다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순왕후는 문효세자와 의빈성씨 사망의 배후에 은언군과 홍국영의 잔당이 있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당시 정순왕후와 정조대왕은 서로 대립하는 관계였고 은언군 역시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고려할 때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일조한 정순 왕후가 순수한 마음으로 이 하교를 내렸을 가능성은 희박하며 독살설을 뒷받침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문효세자와 의빈성씨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음은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왕조실록 기록들은 병증이 괴이하였다는 말로 은근히 독살 가능성들을 시사하는 문구들이라 가능성만을 보여 줄 뿐이며 정조대왕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무수한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문효세자의 입적 문제로 약간의 갈등을 빚은 효의왕후의 독살설도 제기되지만 정조대왕과의 사이도 좋았고 평생 검소하고 권력을 탐하지 않았으며, 경의왕후는 물론 정순왕후에게도 지성을 다하였던 효의왕후가 의빈을 독살까지 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또한 오랜동안 기다려온 세자를 낳아 왕실의 상하로 부터 총애를 받았던 의빈성씨이기에 왕실내에서의 독살 가능성은 그리 커보이지는 않는다.

그 외 노론의 독살설도 있지만 의빈성씨는 정치적 배경이 전혀 없어 정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없고, 후궁의 칭호를 내리는 일이나, 왕세자의 이른 책봉에 노론 대신들의 주청이 있었던 것을 보면 이마저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문효세자와 의빈성씨의 갑작스런 죽음은 의문으로 남는다. 그리고 영원히 그 진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의빈성씨의 역사적 삶의 흔적들을 보면 왕세자를 낳은 후궁이 되는 절정의 기쁨과  뱃속의 태아를 포함 아이 셋과 자신마저 죽음에 이르는 극단의 비극적 삶을 동시에 겪었으며 단지 그걸로 영원히 끝이었다.  딸은 한 살이 되기 전에 잃고, 차기 왕권을 이어받을 아들마저 잃고, 임신한 체 어느날 죽음에 직면했다고 생각을 해보라...정순왕후는 하찮게 생각 했을지 몰라도 한 여인의 삶으로서 이보다 더 극적인 삶이 있을까...정조대왕의 파란만장한 삶과도 어찌보면 닮은데가 많은 여인이다.

  마지막으로 드라마 이산에서는 궁궐 음모의 연속보다는 정조대왕과 의빈과의 이야기를 통해 보다 인간적인 면이 깊게 다루어지고 다양한 인물의 설정을 통해 보다 많은 이야기를 다루었으며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메마르고 척박한 세상에 왕과 평민의 로맨스는 언제나  극의 좋은 소재가 아니던가...더구나 애절한 삶의 이야기라면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얼마든지 각색해서 보여줄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정조시대의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을 통해 조선후기 마지막 불꽃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는가...드라마 이산은 극의 중반에 홍국영을 지나치게 부각시킴으로 극의 중심을 잃어버린 것과 음모의 연속으로 인한 시청자들의 피로도를 증가시킨 것이  좋은 출발에 비해 전체 구성을 엉성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아 많은 아쉬움이 남는 드라마다.

의빈성씨 그 두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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